발해의 멸망과 부흥 운동

발해의 마지막 왕인 대인선의 통치 시기에 동아시아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거란족이 부흥하며 발해를 위협하였습니다. 결국 거란의 침략으로 발해는 멸망하였습니다. 발해의 멸망과 부흥 운동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발해-멸망-부흥-운동-표지


발해의 멸망

발해의 멸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대표적이고 정설로 알려진 발해 멸망의 원인을 알아보겠습니다.

1. 정치적 혼란과 외교적 고립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은 후량, 신라, 일본 등과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펼치며 거란의 위협을 막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외교적인 고립을 피하지 못하고, 거란의 침략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2. 거란의 침략

야율아보기의 지도 아래 거란족은 발해를 향한 정복 활동을 강화하였습니다. 924년에는 서방과 발해의 정복을 동시에 목표로 삼아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925년 12월, 거란은 발해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단행하여 결국 926년 1월 발해를 멸망시켰습니다. 거란의 침략은 발해의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3. 내부 분열과 반란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발해의 옛 영토에서는 반란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동단국이 세워진 후에도 여러 발해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거란의 지배에 저항하였습니다. 이러한 내부 분열은 발해가 멸망하는데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발해의 부흥 운동

발해가 멸망한 후, 여러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각 부흥 운동은 발해의 재건을 목표로 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1. 후발해

후발해는 발해 멸망 후 처음으로 일어난 부흥 운동 중 하나입니다. 고정사가 후당에 발해의 사신으로 갔던 929년경에 건국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후발해의 정확한 건국 연대와 멸망 시기는 불분명합니다. 후발해는 10여 년간 존속하다가 정안국에 흡수되었거나 올야 세력으로 존속하였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중심지 역시 상경 용천부 지역과 압록강 유역 설로 나뉩니다.

2. 정안국

정안국은 970년에 처음 송나라에 표문을 보내며 기록에 등장합니다. 본래 발해의 마한 종족이 거란의 공격을 받아 서쪽 변경에서 건국한 나라로, 독자적인 연호인 원흥을 사용하였습니다. 981년에는 왕권 교체가 이루어졌고, 이후 991년에 왕자 태원이 송나라에 표문을 보낸 후 기록에서 사라집니다.

3. 오사국

오사국은 975년에 발해의 부여부 지역에서 위장으로 지내던 발해 유민 연파가 거란에 반기를 들었다가 올야성으로 패주하면서 등장합니다. 오사국은 발해의 수도였던 홀한성 또는 부여부 근처로 추정됩니다. 왕은 오사성 부유부 발해염부왕 또는 발해염부왕, 발해왕 등으로 불렸습니다. 1004년 여진이 오소경의 처자를 사로잡아 요나라에 보낸 기록으로 보아 세력이 약화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4. 흥료국

흥료국은 1029년 대조영의 7대손인 대연림이 요나라 동경 요양성에서 세운 나라입니다. 연호는 천경 또는 천흥을 사용하였습니다. 대연림은 건국 직후 고려에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도움을 받지 못하였고, 요나라 토벌군에 의해 약 1년 만에 멸망하였습니다.

대발해국의 시도와 실패

1. 고영창의 대발해국

건국 1116년, 고영창이 요양에서 대발해국을 건국하였습니다. 국명은 대원국 또는 대발해국으로 불리며, 연호는 융기 또는 응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영창은 요동의 50여 주를 함락하며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요나라 군대에 패하여 멸망하였습니다.

2. 대발해국의 멸망

고영창은 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오히려 역공을 받고 도망 중에 붙잡혀 건국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멸망하였습니다. 대발해국의 시도는 발해 유민들의 마지막 부흥 운동으로, 실패로 끝나면서 발해의 부흥 운동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부흥 운동의 역사적 의미

1. 발해 유민들의 저항

발해의 부흥 운동은 발해 유민들이 독립적인 국가를 재건하고자 했던 강한 저항 의지를 보여줍니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 부흥 운동은 발해 유민들의 지속적인 투쟁을 상징합니다.

2. 역사적 교훈

발해의 부흥 운동은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작은 국가들이 강대국에 의해 멸망하고 부흥을 시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의 국제 관계와 비교해도 많은 교훈을 제공합니다.

3. 문화적 유산

발해의 부흥 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발해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발해 유민들이 각지로 흩어지면서 발해의 문화와 전통은 다른 지역으로 전해졌고, 후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론

발해의 멸망과 부흥 운동은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발해는 거란의 침략과 내부 분열로 멸망하였으나, 발해 유민들은 여러 차례 부흥 운동을 통해 국가 재건을 시도하였습니다. 후발해, 정안국, 오사국, 흥료국, 대발해국 등의 부흥 운동은 발해의 재건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흥 운동은 발해 유민들의 강한 저항 의지와 발해 문화의 지속성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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